황선우의 '물개 본능' 전국체전서 쑨양 기록 지우고 1분43초대 진입

황선우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세운 종전 한국기록 1분44초40을 0.48초 단축했다. 쑨양의 아시아기록 1분44초39와는 불과 0.01초 차이였던 만큼, 언젠가 자신의 기록 경신과 동시에 대륙 기록이 무너질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기록의 벽은 집요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1분44초62로 한국기록을 경신한 뒤 4년간 단 0.22초만 줄였던 그는, 올 시즌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을 거치며도 1분43초대 문턱을 넘지 못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집념의 결실이 전국체전 무대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력으로 터졌다.
레이스 전개부터 압도적이었다. 항저우 때의 50m, 100m, 150m 구간 통과 기록(24.33, 50.69, 1:17.61)과 비교해 이번에는 23.96, 50.27, 1:17.08로 모든 구간을 앞섰다. 막판 랩에서도 스피드를 유지한 그는 흔들림 없이 터치해 마침내 1분43초 장벽을 돌파했다. 이 기록으로 황선우는 2024 시즌 남자 자유형 200m에서 루마니아의 다비드 포포비치, 미국의 루크 홉슨에 이어 세 번째로 1분43초대에 진입했다. 수영 역사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1분43초대 기록 보유자는 이제 일곱 명뿐이다.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전신수영복을 입은 폴 비더만이 세운 세계기록 1분42초00은 16년째 요지부동이지만, 규정 수영복 시대에 나온 황선우의 레이스 가치는 더욱 또렷하다.
국내 무대의 상징성도 크다. 황선우는 이 종목에서 전국체전 4연패를 달성하며 ‘국내 최강’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국제 최정상’으로서의 안정감도 이어가고 있다. 2022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은메달, 2023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동메달, 2024 도하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수영 최초로 두 대회 연속, 나아가 세 대회 연속 메달의 역사를 썼다. 지난 7월 싱가포르 세계선수권에서는 1분44초72로 4위에 머물러 4연속 메달엔 실패했지만, 그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겨울 사이 병역의무 이행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느라 약 한 달간 수영을 쉬어야 했던 공백을 이겨내고, 시즌 막판 국내 무대에서 아시아신기록을 터뜨린 것이 그 자신감의 실체다.

경기 후 그는 이례적으로 눈물을 보였다. “원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행복한 날”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도쿄올림픽 때부터 1분44초는 반드시 넘고 싶은 벽이었다. 자주 1분44초대를 찍고도 끝내 1분43초에 못 들어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기록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28 LA올림픽 메달을 향한 로드맵에서, 경쟁력의 객관적 증거이자 자신감의 확고한 근거다.
한편 쑨양의 상징적 기록 붕괴는 아시아 수영계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도 읽힌다. 쑨양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400m와 1500m 아시아기록을, 2017년엔 200m 아시아기록을 세우며 장거리부터 중거리까지 시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도핑 샘플 채취 과정에서의 충돌과 각종 의혹으로 4년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고, 2019 광주 세계선수권 시상식 보이콧 사태까지 겹치며 ‘오욕의 챔피언’으로 남았다. 지난해 복귀했지만 예전의 위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쌓아 올린 성벽의 첫 벽돌을 황선우가 걷어냈다. 정정당당한 기록으로, 합법적 훈련과 과학적 준비로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국제 수영계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제 관심은 다음 목표로 향한다. 남자 자유형 200m는 초고속 스타트와 안정적 중반 운영, 막판 킥의 결합이 완벽해야 하는 종목이다. 황선우는 스프린트와 중거리의 장점을 겸비한 드문 유형으로, 스타트·턴·서프스케이팅 효율까지 상향되며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남은 과제는 국제 빅게임의 결승에서 변수를 최소화하는 루틴과 체력 분배의 정밀화다. 한국 수영은 이미 그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전신수영복 시대 이후의 ‘사람 기록’으로 세계 최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금, 1분43초대의 문을 연 황선우의 다음 걸음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LA의 물결은 그의 이름을 더 높이 부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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